D-3 아침부터 정말 고단한 하루였다. 정말 실수하고 싶지 않았는데 신경 쓰이는 일들만 가득이었다. 학교 가던 길에 넘어진 것은 물론이고 들고 있던 서류들은 내 품에서 빠져나가겠다고 난리란 난리는 다 쳤다. 강의실은 왜 저리 먼 것인지. 하루하루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. “너는 일을 잘 하니까.” 아니, 나는 그리 일처리가 빠르지 않다. “누구보다 책임...
얘, 아가야. 말 좀 들어보련, 그래 너 말이야. 어젯밤에 저 똥통에 빠지질 않았니, 왜 그랬던 거니. 그리 물으셨다. 노비인 제게 묻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깜짝 놀라 바람이 세 번 정도 지나가고 나서야 대답을 할 수 있었다. 신기하지 않은가. 바람이 세 번 지나간 것이다.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 말이다. 개미가 내 발치에서 저짝에 풀숲까지 ...
엄마, 안개가 분홍색이에요. 그래, 그땐 내가 그렇게 말했었지. 엄마는 내게 그것은 핑크 뮬리라는 식물이야. 안개가 아니란다. 이렇게 말해줬어. 난 그게 안개인 줄만 알았거든. 그래서 손을 뻗어서 만져봤어. 왜, 안개는 만져지지 않잖아. 근데 그건 내 손에 부드럽게 닿는 거야. 그래서 알게 됐어. 이건 핑크 뮬리구나. 그땐 내가 일곱 살이었어. 창가를 보며...
저게 뭐지. 눈을 뜬 순간 들었던 생각이다. 눈앞에 한 사람이 있다. 적갈색의 머리에 주근깨, 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. 아는 얼굴이었다. 나는 여자아이의 오른쪽 뺨을 어루만져 보았다. 그러자 그 여자아이도 나와 같이 손을 들어 내 쪽으로 뻗었다. 내가 잠시 뒤로 물러나자 여자아이도 같이 물러났다. 마치 내 행동을 따라 하는 것 같았다. 여자아이의 입에서 거...
그녀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 앞에 있는 나무 상자에 발을 올려놓은 채로 무릎에 턱을 괴었다. 그녀의 시선이 느릿하게, 그리고 또 나른하게 올라와 나를 바라보았다. 짧은 머리칼, 긴 속눈썹, 붉은 입술, 하얀 피부, 그런 얼굴에 매우 잘 어울리는 검은 옷. 시선을 내리니 또 보이는 하얀 발. 나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. 순간, 코를 찌르는 무언가의 냄...
좁디좁은 그 방엔 작은 창문 하나만이 빛을 들일 수 있었다. 외에도 양초가 방 양쪽에 불을 밝히고 있었지만 그렇게 밝지는 않았다. 돌로 된 벽에 바닥, 그곳은 사실상 방이 아니라 감옥이었다. 편의상 다들 방이라고 한다. 그만의 방. 그러니 감사하라고, 방을 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라고들 한다. 하지만 텐에겐 감사라는 감정 같은 건 없었다. 누구라도 옆과 ...
살아있음을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? 그건 말이지. 계속 적어내면 돼. 무엇을? 네 몸 속에 들락거리는 숨을. 숨은 적을 수 없어. 그렇다면 하루하루 흘려대는 눈물을. 눈물도 적어낼 수 없어. 그럼 가끔 예쁘게 짓는 미소를. 미소도 적을 수 없는걸. 그러면 네가 가고 있는 길의 발자국을. 발자국은 찍어낼 수 있겠다. 맞아, 적어내는 거야. 네가 살아있는 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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